생활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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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실천이라도 동기가 어두울 수 있습니다. (개인의 명예, 공명심, 인정의 욕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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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활동가들의 소진이 멈추고 보다 근원적인 ‘선(善)’을 향해 작용 할 수 있습니다.

제목 안식일에 기억해야 할 것 - 생활과묵상58 등록일 2024.05.10
글쓴이 정일용신부 조회 193

루가 6;1-5

1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 가시게 되었다. 그 때에 제자들이 밀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 몇몇이 "당신들은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3 예수께서는 이렇게 물으셨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4 다윗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 가 사제들밖에 먹을 수 없는 제단의 빵을 먹고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일에 기억해야 할 것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의 유대교인들은 안식일 날,

그러니까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날 저녁까지

25시간을 하느님의 시간으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안식일 날에는 입은 옷 외에 거의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못합니다.

작은 열쇠나 손수건같이 지극히 사소한 것들도

집에 놔두고 와야 한답니다.

 

그 작은 것을 드는 것도 노동이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날에는 담배도 태울 수 없고, 자동차도 운전을

할 수 없습니다. 논과 밭에 곡식이 익어도 그 시간 만큼은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쉽니다.

 

심지어 결혼하거나 이혼도 안식일에는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안식일을 지키며 자연스럽게 불편을

감수하며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이런 세세한 규율과

법적 강제를 뛰어 넘어 근원을 향하는데 있습니다.

생명을 창조하는 노동이 얼마나 신성하고 힘든 일인지요.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중심에는 언제나 이스라엘이

있었습니다. 생명을 보듬고 확장시키는 일이 아니라

죽음을 생산하는 일에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써서는 안 됩니다.

 

성전(聖戰)은 없습니다.

모든 전쟁은 하느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처럼 굶주린 이에게 빵을 주는 행위가

안식일에 기도하는 행위보다 거룩하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의 주인은 박제된 신성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쉬며 아픈 생명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신음하는 생명을 보듬고 생기를 불어넣는 당신의 활동에 우리를 불러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