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22 이 때 그 지방에 와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서서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읍니다" 하고 계속 간청하였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가까이 와서 "저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 오고 있으니 돌려 보내시는 것이 좋겠읍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24 예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2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께 다가와서 꿇어 엎드려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26 예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며 거절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는 "주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28 그제야 예수께서는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차별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마귀 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여인 이야기는 읽는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늘 보여주셨던 측은지심이 아니라 차별의 시선으로 차갑게 거절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유대인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해 당시 세대가 품고 있는 사회적 편견을 드러내고 결국 대중들 앞에서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선포하셨습니다. 역설이지요.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자기 딸의 병이 어머니인 자신과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려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간혹 부모의 일그러진 사랑이 자녀들을 어떻게 망치는지를 봅니다. 그 힘은 놀랍게도 “책임감”이라는 위대한 가치예요. 딸이 아픈 이유에 그 어머니도 무관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어떤 식이던 자식과 어미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일어난 치유의 역사는 단순히 한 개인이 받은 은총을 넘어섭니다. 딸의 어머니는 ‘이방인 여성’인 자신을 손가락질 하는 차별의 시선에 순응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저항합니다. 그렇기에 딸의 치유는 곧 그 어미의 치유이고 당시 억압받은 이방 여인들의 치유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신음 속에 죽어가는 무수한 이들의 회복을 돕는 것이 곧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는 길임을 다시금 고백합니다. ■ 오늘의 기도 하느님의 은총을 훼방하는 차별이라면 용기 내어 저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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