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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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수원나눔의집은 기도와 실천의 일치, 성찰과 활동의 일치를 지향합니다.
의로운 실천이라도 동기가 어두울 수 있습니다. (개인의 명예, 공명심, 인정의 욕구 등)
모든 활동은 성찰의 수고와 함께 조명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활동가들의 소진이 멈추고 보다 근원적인 ‘선(善)’을 향해 작용 할 수 있습니다.

제목 모 닥 불 - 생활과묵상50 등록일 2023.11.23
글쓴이 정일용신부 조회 197

루가 14:15-24

15 같이 앉았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하느님 나라에서 잔치 자리에 앉을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자 16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준비하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였다. 17 잔치 시간이 되자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자기 종을 보내어 준비가 다 되었으니 어서 오라고 전하였다. 18 그러나 초대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못 간다는 핑계를 대었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으니 거기 가봐야 하겠소. 미안하오.' 하였고 19 둘째 사람은 '나는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보러 가는 길이오. 미안하오.' 하였으며 20 또 한 사람은 '내가 지금 막 장가들었는데 어떻게 갈 수가 있겠소?' 하고 말하였다. 21 심부름 갔던 종이 돌아와서 주인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집주인은 대단히 노하여 그 종더러 '어서 동네로 가서 한길과 골목을 다니며 가난한 사람, 불구자, 소경, 절름발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하고 명령하였다. 22 얼마 뒤에 종이 돌아와서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다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고 말하니 23 주인은 다시 종에게 이렇게 일렀다. '그러면 어서 나가서 길거리나 울타리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도록 하여라. 24 잘 들어라. 처음에 초대받았던 사람들 중에는 내 잔치에 참여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모닥불


잘 아는 분은 아니지만 나름 면식이 있었던 어떤 교우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있는 지역에 당신의 친척이 사시는데 얼마 전 병원으로부터 시한부선고를 


받았다는 거예요. 제게 세례성사와 함께 조심히 그분의 장례를 부탁하시더군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분의 장례를 준비한다는 것은 


심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친척분의 세례성사를 진행하며 제 안에서 울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분의 마지막을 극진히 보살펴드려야겠다.’

 

세례성사 후, 첫영성체를 받으러 예배에 나오셨는데 그날이 성공회교회에


나온 첫날이자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이후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인근 호스피스 병원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지요.


병원을 찾아 그분 곁에 있으면 꼭 모닥불가에 앉아있는 느낌입니다.


생의 불꽃은 다 태워져 화려하진 않지만 남아있는 작은 불씨들이

 

포근하고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를 위협하지 않는 그 잔잔한 온기에 


저도 모르게 두 손이 불가로 향합니다.

 

생의 아픈 굴곡을 거치며 뒤늦게 하느님나라에 초대받았지만 그분의

 

영혼은 분명히 주님과 함께 행복한 잔치를 즐기고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평화롭게 사람을 대하고 주님의 딸로 새롭게 태어남에 


아이처럼 기뻐하셨던 분.

 

이제 더 볼 수 없어 슬프지만 그분과 나눈 친밀한 사랑은 작은 


모닥불이 되어 제 안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느님 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주님


아이같은 순수함으로 당신의 나라를 받아들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