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 14:13-21 13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거기를 떠나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그러나 여러 동네에서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육로로 따라왔다. 1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거기 모여든 많은 군중을 보시자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들이 데리고 온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군중들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먹도록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17 제자들이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하고 말하자 18 예수께서는 "그것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을 풀 위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제자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우리는 늘 기름진 고기를 그리워한다. 동네 어르신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분들 삶에 특별히 각인되어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배고픔과 굶주림의 기억이지요. 그래서인지 우리의 전래동화 중에는 유독 배고픈 환경을 배경으로 다루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공양미 300석에 자신의 몸을 팔아야만 했던 심청이의 이야기나 가난한 흥부의 이야기 등. 그만큼 배고픔이라는 아픈 기억은 우리 민족에게 아주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오병이어의 사건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들은 핍박과 굶주림에 익숙한 민족입니다. 그들에게 빵은 그만큼 절실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긴 광야행군에 지친 그들이 하느님께 요청하는 것은 언제나 먹을 것이었지요. 오늘 오병이어의 사건을 목도한 그 사람들은 아마도 예수님을 이스라엘 안에 기근을 해결해 줄 분으로 잘 모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쳤습니다. 더 나아가 ‘산상수훈’에서는 배부른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지 않고, 굶주린 사람이 행복하다고 선언하셨지요.
당시 이스라엘은 끈질기기도 돌을 빵으로 바꾸어 보라고 요청했지만 예수께서는 빵으로만(빵도 필요하지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더 중시 여겨야 한다고 거절합니다.
물론 가난은 극복되어야합니다. 그러나 가난을 극복할 빵과 자본도 중요하지만 우리 내면의 허기를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영혼의 양식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라도 다시금 기름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그리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늘 끊임없이 우리 가슴을 움켜잡게 만드는 근원적인 허기를 채워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