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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가 9:46-50 제자들 가운데 누가 제일 높으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일어났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신 다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 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중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다.” 요한이 나서서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니 막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 가장 작은이들의 곁 오래전 강화의 한적한 마을에서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몇 할머님들과 친해져서 가끔 집에 찾아가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자신이 살아왔던 한 맺힌 모진 인생을 몇 시간씩 이야기하시지요. 그리고 언제나 같은 스토리입니다. 언젠가 이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여계실 때 제가 한 할머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분의 힘든 과거사를 듣고 있던 중이었지요. 그런데 옆에 계신 할머님이 “에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하시며 끼어드십니다. 본인이 더 힘들게 고생했다는 의미이지요. 그렇게 두 할머님의 고생 배틀(battle)이 벌어집니다. 두 분은 서로 ‘내가 더 불행했다’며 고생보따리를 꺼내시는데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슬픈 일이지요. 더 불행한 사람이 승리하게 되는 어르신들의 삶 이야기. 오늘 제자들의 다툼에서도 그런 슬픔이 느껴집니다. 어르신들의 고생이야기처럼 결국 ‘나’를 인정하고 알아 달라는 의미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누가 더 힘들게 살았느냐? 누가 더 높으냐? 그냥 그 옆의 동료를 바라보고 인정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나만큼 당신도 힘들었구나’ ‘나만큼 당신도 존귀하구나’
인정하면 되는데 슬프게도 이 싸움에 타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에게로만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내 주위’를 보지 못합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우리를 가장 작은이의 곁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는 이 작은이를 진심으로 받아드리라고 말씀하셔요. 늘 여전히 고백하게 됩니다. 그 길만이 주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그것은 항상 주님께서 계시는 곳이 바로 가장 작은이들 곁이기 때문입니다. ■ 오늘의 기도 좀 더 낮은 곳에서, 좀 더 작은 모습으로, 좀 더 외로운 마음으로 당신을 만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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