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20:24-29 24 열두 제자 중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도 같이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27 그리고 토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28 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29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신뢰! 당신의 민낯을 보는 것. 얼마 전에 동네 사우나를 다녀왔는데요. 유독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어떤 기억이 올라옵니다. 오래전 어느 섬에 있을 때 보건소에서 운영하던 이동목욕 봉사를 한 일이 있었거든요. 목욕 전에 할아버님들 옷을 벗겨드릴 때는 항상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남의 손에 자기의 몸이 휘둘려지는 것이 못 마땅 하셨는지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자기 힘으로 옷을 벗겠다면서 힘겹게 몸을 움직이세요. 그런 실랑이가 끝난 후 알몸이 되셨을 때는 그야말로 자신의 몸을 온전히 제게 맡기십니다. 자기를 감추고 있던 옷들이 사라지고 이젠 누군가에게 자기를 통째로 보여준 상황인 것이지요. 그때부터 비로소 그 할아버님과 저와의 관계가 싹틉니다. 살면서 타인에게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은 지극히 드믄 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못난 민낯을 보고도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세상에 없을꺼라 여기기도 합니다. 오늘 토마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에 화가 나있어 보입니다. 단순히 터무니없는 말이라 여겼다면 코웃음을 치며 다른 제자들을 비웃었겠지요. 하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그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내가 직접 보고, 또 그분의 상처에 내 손가락을 찔러보지 않고는 절대 믿지 않겠습니다.’ . 하지만 왠지 거친 말과는 다른 그의 감정이 전해져 옵니다. 정말 그리워하며 그분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짜가 아니라 내 눈앞에서 찔리고 피 흘렸던 바로 그 사람. 나의 민낯을 보고도 동요치 않고 나를 사랑해준 예수라는 그 사람을 마음 사무치게 그리워했나 보다. 이제 다신 만난 그 사람을 바라보는 토마는 단 두 마디로 ‘나와 당신의 관계’를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 기도 모두의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찔리고 피 흘린 주님! 우리도 주님을 의심하게 하소서. 그래서 늘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의 참 얼굴을... 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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